옛사람들이 여름날 냇가에 솥을 걸고 끓이는 잡고기 매운탕이나 개장국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웃옷을 벗고 배를 두드리며 먹는다는 데 있었을 것 같다. 냇가에 솥만 걸면 그것이 곧 잔치이며, 잔치는 두 손과 배로 참여하는 것이다. 희생된 생명들은 거기서 생명이기를 그치지만 그것들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들 속에서 어떤 행복의 형식으로 다시 피어난다고 말해도 무정한 말이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은 도끼라고 니체는 말했다. 도끼는 우리를 찍어 넘어뜨린다. 이미 눈앞에 책을 펼쳤으면 그 주위를 돌며 눈치를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 그때 넘어진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127쪽

🍑계절 하면 때, 때 하면 제철

제철이 재첩?!

  요 입추엔 바로 재첩이 제철! 우리가 먹는 조개 중 가장 작은 재첩은 민물조개의 일종이에요. 살만 골라 국으로 끓여내지 않고서야 하나씩 까 먹을 엄두는 도무지 나지 않는(!) 조그만 요 조개, 실은 무더위 견디게 해줄 보양식이자 강장제라 해요. 단백질 함량부터 두부나 달걀에 필적하는데다 특히 메티오닌, 타우린 같은 질 좋은 아미노산을 포함하고 있거든요. 그런 까닭에 “입추 전 재첩은 간장약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그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첩을 여럿 거느린다’ 하여 재첩이라 이름했다는 고사가 있지만, 체망에 탈탈 걸러 재첩을 골라내는 방식을 두고 ‘재친다(제친다)’ 하던 동남 방언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어요. 저는 뒷말의 편을 슬쩍 들어보건대, 경남 양산에서 나고 자란 저는 어릴 적 새벽이면 “재칫국 사이소~ 재칫국~”하는 재치(재첩) 트럭의 소리를 듣곤 했거든요. 거랭이라 불리는 손틀로 강바닥을 긁어 ‘재치는’ 요 전통 방식은 무려 선사시대 때부터 내려온 것이라(!) 세계중요어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해요.

  재첩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그중에서도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한다 하니 제법 까다로운 친구들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섬진강, 특히 하동 재첩이 유명하고요. 섬진강 하면 떠오를 김용택 시인은 요 재첩을 ‘꼬막조개’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요. 과거에는 제가 살던 낙동강 하구에서도 재첩이 났지만 개발과 오염 통에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해요. 재치와 꼬막조개, 그 이름 조금씩 잊힐지라도 우리 강 우리 곁에 계속 남아주면 좋으련만…

🎂당신의 날, 당신의 오늘

계절에 태어난 당신에게

  8월 8일 오늘, 잊을 리 없는 이름 하나 더 있어요. 우리 영원한 스승 ‘황쌤’, 황현산 평론가의 5주기인 것이지요. 선생님 말씀, 그 목소리 그리울 때 아직 거기 계시려나, 괜히 들춰보게 되는 책 하나 있지요. 권현승 에디터 소개로 만나봅니다.

  2019년 8월 8일 황현산 선생님의 1주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가 그 목소리를 담고 세상에 나왔어요. 2014년 11월 오후 9시 6분에 시작해 2018년 6월 25일 오후 6시 53분 끝마치기까지 총 8,554번의 목소리, 하지만 언제나 ‘여기’에 남아 우리네 삶이 답답한 자물쇠처럼 느껴질 때 열쇠가 되어줄 목소리, 그래서 떠나신 그 헛헛한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떠나신 그날에 종이 위에 담은 목소리,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누구나의 선생이었고 누구나의 친구였던 황현산 선생님의 트위터 속 목소리를 모은 책입니다.

  첫 페이지, 선생님의 트위터 첫 글은 “트위터를 시작합니다”였고 그다음 글은 “이제 뭘 해야 할지?”였네요(아무래도 책의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아요). 그렇게 물음표와 함께 시작한 글타래를 이리저리 시간을 오고가고 페이지를 넘나들며 읽어봅니다. 짧은 몇 문장으로 제한되는 트위터의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선생님은 오늘, 바로 지금 선생님께서 느끼고 계셨던 그 무엇을 일필에 담아내셨지요. 그래서 그런지 유독 선생님의 글이 살아 꿈틀대는 말로, 목소리로 다가와요. 오늘은 유독 이런 글이 눈에 띄네요.

  선생님께서 느끼셨을 쓸쓸함을 생각해봅니다. 한편으론 선생님께서도 어른이 될 준비만 하다가 “늙어버렸다”는 느낌을 가지셨다는 사실이, 그 공통의 감각이 어떤 위안이 되기도 하고요. (물론 얼마나 어른이 될 준비를 했는지는 천지 차이일 수 있겠지만요…)

  동시에 ‘내가 죽은 다음에야 올 좋은 미래’를 “지금 나의 일”로 여기셨던 마음, 그 미래를 위해, 좋은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마지막까지도 펜을 놓지 않았던 마음을 생각합니다.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마음과 당신의 죽음 이후의 좋은 미래를 꿈꾸셨던 선생님의 마음이 모여 예리하되 명랑했던, 누구나의 선생이자 친구이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가끔 이 책을 펼쳐 몇 년 전 오늘 선생님의 기록을 읽어보셔요.

지나간 오늘들을 넘어 포개지는 마음을 느껴보셔요.

• 8월 8일:  『잘 표현된 불행』|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8월 15일: 『너 없이 걸었다』

• 8월 16일: 『행복한 난청』

🔔우리 곧 만날 날

다가오는 책들

  글을 마치고도 한참 책을 뒤적이다 2015년 9월 1일 오전 4시 24분에 쓰신 글을 발견했습니다. 이로부터 4일 뒤, 2015년 9월 5일은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파리의 우울』(문학동네)이 발행된 날이지요.

  그로부터 약 3년 뒤인 2018년 5월 5일, 이번에는 새벽이 아닌 정오 무렵, 선생님께서 또하나의 글을 남기셨네요.

  난다가 유족분들로부터 번역 원고를 전해 받은 것은 올해 초, 받아든 원고 파일의 최종 수정 시간은 2018년 7월 1일 오전 8시 56분이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여름까지 원고를 붙잡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이지요. 선생님의 노고에, “좋은 책 한 권”을 만드시고자 했던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황현산 번역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난다의 다가올 책입니다.

🔎책이라는 만듦새, 우리의 만짐새

난다는 책을 뜯어…

  본디 자연의 생명력을 발산했을 초록빛, 그러나 아폴리네르의 초상화에서는 그런 태초의 움직임은 모두 힘을 잃어버린 것 같죠. 초상화를 보자마자 표지의 색은 음울한 초록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내 아폴리네르, 마지막 순간에 에우리디케를 놓쳐버린 오르페우스처럼요.

  이들의 초록빛을 담을 표지 종이로 색감에 대한 표현력이 뛰어난 아코프린트를 골랐습니다. 초록빛의 음울함, 또 그 음울함 속에서 다시 태어날 시인의 생명력, 이 미묘함을 모두 담아야 했기 때문이죠. 또 표지 중앙, 형압으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오르페우스 판화에는 아직은 찬란하지 않은,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뗀 듯한 차분한 금색을 입혔답니다.

👨‍👩‍👦‍👦 아주 사적인 난다의 오늘

난다는 지금!

  (예고한 바와 같이!) 오은 시인이 난다 편집부의 근황을 알립니다. 지난 레터 패트와 매트에 이어 펑펑과 팍팍의 오늘은…?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김민정 시인과 함께, 우문즉답

  황현산 선생님의 날들 그리고 말들. 누구보다 가까이 지킨 이에게 누구보다 가까이서 들어보려고요, 김민정 시인과 인터뷰를 해보았답니다. 질문은 우매하나 답변은 날카로운 5분 내외 5개 문답, <우문즉답>입니다.

김민정 시인(민) 그리고 김동휘 편집자(휘)

우문 ①

휘:  황현산 선생님(이하 황쌤!)은 지금쯤 어디 계시려나요?

민:  어디 안 갔다. 부르면 온다!

휘:  앗, 5문 5답이 5글자로 대답하기는 아니었는데…

우문 ②

휘:  『악의 꽃』 완역본, 어쩌다 올해가 되었을까요?

민:  원고를 이제야 찾았으니까! 분명 선생님 생전 쓰던 원고들 있을 거라고, 일우(황일우 교수)한테 아버지 컴퓨터 한번 뒤져봐라, 거기 진짜 있다, 몇 년을 그랬었어. 못 찾고 못 찾다가 어느 날 우연히 '어, 진짜 있는데요!' 이렇게 딱 만난 거지. 이걸 어쩌면 좋을까 하다가, 난다가 맡아줬음 좋겠다, 그렇게 됐지.

휘: 하도 못 찾으니까 황쌤이 거참 여기 있네! 하고 가셨나보다…

우문 ③

휘:  이제 황쌤 유고는 진짜 끝? 없다?

민:  있다! 황현산의 '번역' 에세이가 있어. 번역했던 책들 서문도 있고, 번역론 논문도 있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정리해보자 책으로 묶어보자 했었는데, 원고 출력한 거 책상 위에 고대로 올려두고 가셨어. 시간이 걸리겠지만… 선생님 또 한참 불러내가지고, 이거 어째요? 하면서 만들어봐야겠지.

휘:  또 황쌤 만나러 가야겠네요!

우문 ④

휘:  황쌤 부르는 비결은?

민:  일단 낮에는 절대 안 나와! 내가 속타서 울거나 짜증내거나… 항상 마감에 임박해야 오시지.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편집할 때 선생님 제일 많이 불렀지. 인쇄 직전까지 제목이 안 나와서 막 우는데, 한참 울다가 해 질 쯤에 막 짜증내면서 울고불고, 그러다 갑자기 딱 그 제목 문장 언저리가 눈에 들어오는 거지. 암튼 낮에는 절대 안 나와!

휘:  역시 밤이(의) 선생이셔서… 황쌤 부르는 법 정리해둘게요. "밤+눈물+마감!"

우문 ⑤

휘:  그럼 황쌤과의 TMI 근황(?!) 업데이트!

민:  꿈에 한번 나왔어. 이발사가 됐더라고. 지하상가에서 계단을 따라 막 올라갔는데, 프랑스 파리인 거야. 내가 파리를 한번도 안 가봤는데, 여기가 파린가? 싶더라고. 선생님이 멜빵바지를 입고 머리를 한참 깎고 있는 거야. 뭐 해요? 했더니 그러더라. "내 직업은 이발사다." 그래서 행복해요? 물었더니 너무 행복하대. 너무 행복해보였어.

휘:  보태고 싶은 말 많지만 이렇게만 쓸게요. "내 직업은 이발사다. 그리고 행복하다."

🚪닫는 문

가을바람 위 엽서 한 장 띄우네…

  가을로 접어드는 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면 그 '입추'도 이런 모습일까요? 가을이라 이름해도 여전히 활활 더운 때, 다가올 수확과 풍성한 결실 느긋이 기다리는 무렵. 그리 여기자면 밤도 손님일 테지요. 하루엔 본디 낮과 밤이 다 있으니까, 밤은 길고 깊어 언제나 우리의 선생일 테니까, 가뿐히 문턱 넘어 어느 가을로 밤으로 산책하듯 나서봅니다.

  오늘 문 뒤엔 유진목 시인의 엽서 한 장 붙여두어요. 유진목 시인을 알아보았던 그 밝은 눈, 또 다정했던 선생님 목소리에 오랜만 대답하는 편지일 테지요. 부디 그곳까지 널리 멀리 닿을 오늘의 소문이기를!

처서處暑에 돌아올게요. 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