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오는 소문

오로지 색채로 이루어진 풍경

🌲기다려온 소문

기다린 만큼 더, ‘어떤 나무’의 약속

  『어떤 나무들은』은 미국 아이오와주 아이오와시티 아이오와대학(!)에서 주최하는 인터내셔널 라이팅 프로그램(IWP)에 참가하게 되어 생애 첫 외국 여행을 떠난 최승자 시인이 1994년 8월 26일 일요일부터 1995년 1월 16일 월요일까지의 여정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낸 일기 형식의 산문입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낯선 작가들과 만나 벌어지는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특유의 ‘직진성’으로 풀어낸 기록이랄까요. 처음 책을 펴내며 서문에서 “독자들은 아마도 ‘밥 먹고 잤다’밖에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점이 실은 염려스럽기도 하다” 불쑥 고백하는 그 솔직함만 봐도 알 만하지요.

  실은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에 이어 『어떤 나무들은』을 복간하면서, 편집자로서의 개인적 선호를 고백하자면 요 책, 『어떤 나무들은』 쪽으로 마음이 살짝 기울었는데요, 시를 향한 시인의 치열함과 과감함만큼이나 제가 사랑하는 것이 시인 특유의 천진함, 유머이기도 한 까닭에요. (난다에서 가장 ‘웃긴’ 책 한 권 뽑으라면 주저 없이 요 책을 내밀겠어요…)

  이를테면 이런 일기,

  분명 여정의 시작은 8월, 여름부터 겨울까지 제법 긴 시간의 기록인데 어쩐지 이 책을 생각하면 코끝 시큰한 겨울의 온도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아이오와 이전의 최승자 그리고 이후의 최승자를 우리가 모두 알고서 이 기록들을 따라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미국 체류의 끝 무렵이자 이 책의 막바지, 1995년 1월 시인은 거리에서 우연히 한 헌책방에 들어서게 되지요. 무엇에 이끌리듯 가장 안쪽 코너에서 시인은 두 권의 점성술 책을 발견합니다. 『쌍둥이좌, 1995』 그리고 『목양좌, 1995』. 열두 개의 별자리 중 나머지 책들은 모두 팔려 없고 하필 자신과 관계있는(시인의 별자리가 쌍둥이자리이지요) 두 별자리의 책만 남았다는 데서 시인은 어떤 운명적 계시 같은 것을 느낍니다. “그런 것들이 일어난다는 것, 또는 그럴 거라고 믿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심리학적인 나를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미 앞서 나타났던 사회학적인 나에 대한 깨달음과 나란히 함께 나아가면서, 이제는 옛날의 나였던 것을 잘라, 떨쳐버리게 해줄 수 있다는 것, 그런 확신” 말이지요.

  이후는 우리가 아는 대로, 시인은 신비주의와 점성술의 세계를 탐독하며 1999년 시집 『연인들』을 펴내고서 기나긴 침묵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떤 나무들은』은 이미 30여 년 전의 기록이건만, 시인이 그 ‘머나먼 세계로’ 떠나려는 결심을 품는 이 대목에서 쓰리고 시린 마음 문득 들기도 합니다. “이제 간다. 안녕, 안녕.” 시인이 아이오와를 향해 남기는 작별 인사가 꼭 우리를 향한 것만 같은 거지요.

  그래도요, 지지난해 이렇게 두 권의 책을 다시 우리 곁에 돌려준 최승자 시인, 오래된 약속 잊지 않고 돌아왔답니다. 지난 11월 26일, 포항의 죽도성당에서 최승자 시인이 영세를 받았어요. 물론 건강한 모습으로요. 독자들 위해 산문집에 직접 서명을 남기기도 했고요. 영세성사에 다녀온 난다도 짧은 기록을 남겨보았어요. 읽는 이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오래, 그러나 의심 없이 기다렸음 알기 때문에요.   👉난다 인스타그램에서 만나기 

  아무리 멀어도, 아무리 오래 걸려도, 끝내 시의 곁으로 돌아올 것을 아는 이들의 기다림. 눈이 온다는 것, 아무래도 눈 녹을 계절 또한 다가온다는 뜻이겠지요.

📗1번 독자의 메시지

우리가 읽은 책, 우리가 읽을 책

  지난 11월 30일, 인문 예술 전반에 걸쳐 평생의 읽기와 쓰기로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성실히 펼쳐온 김인환 선생님의 신작 『근대의 초상』이 출간되었어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30년 동안 비평론과 문학사를 가르쳐온 김인환 선생님은 비평론 강의를 마치고 나오며 ‘자본론을 공부해야 한다’는 당부를 남겼는데요, 정년하고 10여 년이 지난 올해 설, 제자로부터 편지를 받게 됩니다. “선생님의 문학사를 다 읽어도 자본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고요. “예전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무슨 변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한 권의 작은 책을 얽어보았습니다.” 그렇게 이 책이 쓰이게 된 것이지요.

  문학과 비평을 공부하는 데 『자본론』을 읽어야 하는 까닭, 대체 무엇이려나… 알쏭달쏭하지요. 다만 문학도 비평도 ‘자본’도, 인간의 일이자 인간의 몫 아니겠는가 그 연결고리를 짐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 읽다보면 ‘왜 『자본론』을 읽어야 하는가’ 답을 찾아가리라는 것, 그리고 그보다도 그다음, 가지 뻗친 무수한 새 질문들 던지게 되리라는 것.

  오늘은 인터뷰를 대신해 김인환 선생님이 그간 보내주신 메시지들을 소개해보려 해요. 그간 난다의 ‘1번’ 독자로서 항상 난다의 책들에 감상평을 남겨주신 거지요. 한편으론 이 많은 책, 어찌 이리 성실히 또 부지런히 읽어나가실까, ‘읽는 사람’ 김인환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 들기도 합니다. 짧은 글 안에 담긴 통찰이랄지 매번 적확한 코멘트들은 역시 ‘내공’의 영역일까나요?

신용목, 『재』

신용목 소설, 잘 받았습니다. 시-소설-수필을 나눌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김인환 배. (2021년 11월 30일)

최승자, 『어떤 나무들은』

최승자를 읽으며 잃어버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김인환 배. (2021년 12월 23일)

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안희연 시인, 나날의 경험에서 뜻깊은 사건을 찾아내는 투시력이 놀랍군요. 잔잔하고 애틋한 문체도 좋구요. 김인환 배. (2023년 3월 29일)

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눈 맑고 가슴 맑은 고명재씨! 백설 같은 산문입니다. 김인환 배. (2023년 6월 7일)

  "김인환 배" 하고 끝나는 이 메시지들. 책을 향한 애정이랄까요, 눈 밝은 비평가이자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의 마음가짐 고스란히 담긴 네 글자 아닐까 싶어요. 이쯤 문득 생각하게도 됩니다. 끝없이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선생님의 앞선 책, 『타인의 자유』에서 만난 이런 힌트, 대답 대신 남겨봅니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한 권의 책만 두고두고 읽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책의 하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연과 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책을 읽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과 사회에 대하여 이미 나온 어떤 책보다도 더 잘 해명하는 책을 지어내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다. 어떤 요리사는 음식을 이전보다 더 잘 만들고 싶어서 요리책을 읽고, 어떤 인류학자는 음식의 재료와 조리 방법에 내재하는 규칙의 체계를 구성하기 위하여 요리책을 읽는다. 음식을 만들기 위한 요리책 읽기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요리책 읽기는 서로 다른 독법(讀法)을 요구하지만, 어느 경우에나 독서를 위한 독서는 올바른 독서라고 할 수 없다. 사람과 세상을 더 잘 알고 싶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과 현재 읽고자 하는 책들의 지도를 만들어봄으로써 책과 현실의 차이를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김인환, 『타인의 자유』,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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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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