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의 소문

밤은 길고, 새롭습니다.

📚다가오는 소문

참으로 적절한 이때, 참으로 적절한 만남

2024 시의적절 라인업

1월 김민정
2월 전욱진
3월 신이인
4월 양안다
5월 오   은
6월 서효인
7월 황인찬
8월 한정원
9월 유희경
10월 임유영
11월 이   원
12월 박연준

📗그 시간의 편린

밤과 함께 찾아온 선생들

  한층 깊어지고 추워진 겨울밤이네요. 이쯤 되면 밖에 나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되레 많은 분과 함께한 지난밤이 떠오릅니다. 이번 화요일과 지난주 금요일 밤, 『악의 꽃』을 주제로 열린 낭독회 겸 북토크에는 정말 많은 분이 찾아오셨는데요.

  그중 특히 제 기억에 남는 것은 참석하셨던 분들과 질문하고 답하며 서로 감상을 나눴던 시간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순간, 질문에 중요한 건 ‘적절한’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 자체가 가진 힘이 질문 저 멀리까지 도약시켜주었던 것 같거든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되짚어주셨던 분부터 자신의 느낌을 가감 없이 나누어주셨던 분까지, 이 모든 분이 다 나의 스승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그러고 보면 이 깊은 겨울밤, 찾아오는 것 귀신만은 아닌 모양이네요. 밤과 함께 찾아온 선생들, 그 시간의 편린을 하나하나 되짚어봅니다.

  (영상을 다시 보고 들으며 적었지만 많은 부분 표현을 가다듬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품어주는 마음

  글을 보면 한 사람의 성품이 느껴진다고도 하는데요. 물론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기에 대략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긴 하지만요. 황현산 선생님의 경우 글과 삶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에요. 모범적이면서도 특유의 날카로움이 있달까요. 그런데 보들레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삶과 글 사이의 간극도 느껴지고요. 이렇게 ‘황현산’과 ‘보들레르’는 꽤 다르게 보이는데, 황현산 선생님은 보들레르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끼셔서 번역을 하셨던 걸까요? 아니면 보들레르가 좋아서, 혹은 도전의 마음으로 번역을 하셨을까요?

민: 선생님은 문학 평론가이기도 하셨는데요. 선생님께서 스스로 좋아서 해설을 쓰셨던 시는 다 ‘불편한’ 시였어요. 말하자면 ‘요즘 애들 시는 왜 저러냐’ 할 때의 그런 시였던 거죠. 선생님께 익숙한 시, 그렇기에 선생님이 굳이 해설을 안 쓰셔도 누군가는 쓸 그런 시에 대해선 쓰지 않으셨고, 누구도 안 쓸 것 같고 누구도 잘 쓰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시들에 대해서만 쓰셨죠. 말하면서 저 스스로도 놀라운 발견인데요. 선생님은 분명 해석하기 어려운 시에 대해 교두보 역할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 과정 자체를 재미있어 하셨던 것 같고요. 선생님은 제 시를 보고 저에게 ‘잘하고 있다, 계속 그렇게 써라’라고 말씀하셨던 몇 안 되는 분이셨어요. 마치 ‘어디 한번 해봐 내가 널 천천히, 깊이 읽어줄게’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요. 그때 선생님의 태도는 마치 ‘품어주려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려는’ 듯했어요.

  이 부분에 대해 처음 생각해봤어요. 질문을 안 해주셨으면 저도 이해 못 했을 거예요. 너무 고마운 질문이네요.

이상한 아름다움

  질문보다는 감상에 가까운데요. 저는 보들레르도 잘 모르고 황현산 선생님도 잘 알지 못해서요. 저는 역사를 전공했는데 『악의 꽃』이 쓰였던 시기가 엄청난 격변의, 혁명의 시기였잖아요. 근데 보들레르는 이런 시기에 왜 틈만 나면 여자의 육체에 대해서 찬양만 하고 있었을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한편, 황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번역을 하셨잖아요. 오랫동안 암 투병을 하셨으니 어쨌든 죽음이 머지않다는 걸 아셨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틈만 나면 여자 육체를 찬양하는 시를 번역하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시가 가진 불멸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셨을까? 본인의 삶을 돌아보셨을까? 아니면 그냥 하루하루를 사셨을까? 번역을 끝내시고 주석은 남기지 않으셨기에 그에 대한 답을 직접 주시진 않으셨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다양하게 상상해보게 되는 것도 같고요. 

  또 보들레르의 시대도 격변의 시대였지만 우리 시대도 상당히 힘든 시기잖아요, 두 번의 전쟁을 겪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보들레르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이 상황 자체가 이상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저 너머로의 문 앞에서

민: 저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돌아가실지 몰랐어요. 아프다는 티도 안 내셨거든요. 병문안 가면 그냥 “고맙다”는 말씀이 다였죠.

  그렇게 선생님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것 같았어요. 보통 삶의 마지막에선 삶을 정리하기 마련인데, 선생님의 경우엔 일상과 죽음이 이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문을 닫는 느낌은 없었죠.

  그래서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죽음이 끝이다, 삶 이후에는 우린 볼 수 없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게 됐어요. 괜히 어느 순간에는 선생님이 옆에 계시는 것 같아 불러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선생님 덕분에 경계 짓기를 안 하게 됐어요.

• 오늘 '탐난다 탐방하기 좋은 날' 호시탐탐의 첫날이었어요.
  낮에는 저마다 일도 하고 책도 읽는 작업실 메이트로,
  저녁에는 우리의 일들 우리의 말들 오고가는 열린 집 탐난다!
  
  종종 찾아올게요.
  미리미리 알릴게요.
  호시탐탐, 기다려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