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따듯해진 날씨에 화들짝 놀라 깨며 밖으로 나온다는 경칩驚蟄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봄을 맞이하는 마음은 비슷한 것이, 서양에서는 개구리 대신 마멋이 깨어나는 날을 성촉절Groundhog Day로 기념하고요. 기독교 최대 축일이라 할 수 있는 부활절도 3월 말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들었던 것이 깨어나고 숨죽였던 것이 숨통을 틔우는 그런 계절, 3월입니다.

  끔찍하죠? 저는 곧바로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1989년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가 떠올랐는데요. (스포일러가 될까 더 말씀은 안 드리겠지만) 그리너웨이 감독은 분명히 이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영화는 너무 재밌으니 흥미가 생기시면 꼭 보세요!).

  물론 이런 '끔찍한' 이미지만 있는 건 아닙니다(적진 않지만요). 예컨대 이런 이야기. 역시 은밀히 서로를 사랑하는 기사와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서로 면해 있는 자신들의 저택 꼭대기 탑에 올라 서로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탑에 올라 매일 밤을 새는 아내가 못마땅한 남편이 연유를 묻자 부인은 '나이팅게일의 노래에 귀기울이기 위하여' 탑을 오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샘이 난 남편은 곧장 나이팅게일을 잡아 죽이고 그 시체를 아내에게 던져버립니다. 부인은 슬피 울며 황금 실로 수놓은 비단천에 내막을 소상히 적은 후, 그 천으로 새의 시신을 정성스레 감싸 연인에게 보냅니다. 기사는 매우 슬퍼하며 사람을 시켜 작은 곽을 만듭니다. 오직 순금과 보석만으로. "기사는 곽에 새의 시신을 넣고 뚜껑을 봉한 다음, 그것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개해드린 이야기를 포함해 이 책은 '금지된 사랑'이 주제입니다. '금지된 사랑'이라니, 그 표현부터 진부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중세 사람들의 도덕 관념이 유독 자유로웠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세 텍스트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한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사랑이 오직 당사자인 두 사람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지극히 배타적이고 은밀하며 탈사회적인 일이라고도요. "연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서, 시간 자체에 의해 소멸되고 마지막 남은 미개한 원주민처럼 살아가야만 한다."꙳ 

  '사랑'이라는 말 자체가 낡은 것처럼,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는 현대에, 그런 사회 자체를 거부하고 배격하여 오로지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은' 세계를 꿈꾸는 이 중세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고리타분하고도 위험할 정도로 급진적이게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우문즉답>. 질문은 우매하나 답변은 날카로운 5분 만에 5분 5답, 오늘은 이듬해 봄 신이인 시인과 함께했습니다.

✫모든 내용은 편집자의 기억에만 의존하기에 작가의 실제 발언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신: 가끔씩 3월 냄새가 날 때가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새 학기, 교복 입은 아이들을 만난다든지. (휘: 3월 냄새는 교복 냄새인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날 풀리는 냄새랄까? 공기가 따뜻해지면서, 더이상 시린 냄새가 아니라 시작하는 냄새. 푸릇푸릇하고요.

휘: 사실 3월에 쓴 책이 아니라 미리 3월을 살면서 쓴 책이잖아요. 어떤 경험이었을까요?

신: 고백하자면 3월을 꼭 의식하면서 쓰지는 않은 것 같아요. 3월이 아니어도 좋았겠지만 3월이어서 더 좋았던 이야기들. 그래도 3월, 3월… 되뇌면서 쓰다보니까 들어가게 되었던 게 새 학기, 신학기, 시작하는 이야기. 특히 3월에 저희 어머니 생일이 있거든요. (휘: 앗, 그럼 책에 등장하는 가족의 생일이라는 게…) 맞아요! 3월 6일 내일이에요. 『이듬해 봄』 3월 6일엔 내게 맞는 생일 곡을 찾아주는 글이 있습니다.

휘: 그러니까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하며 트와이스 나연님의 곡을 선곡하신 거군요…? (신: 맞습니다!)

우문 ③

휘: 이야기가 나온 김에, K-POP에도 상당히 진심이시잖아요. 그런데 『이듬해 봄』에선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피하셨다고 들었어요. …왜죠?

신: 제가 ‘덕질’하는 이야기를 (실명으로) 쓰려다보니까 다소 주책맞아 보인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사실은 아이돌보다도, 제가 고아성 배우님 진짜 팬이거든요. 그분의 영화가 나오면 무조건 보러 가고, 그분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다 이해가 돼요. 왠지 저분은 나를 이해해줄 것 같고, 저도 배우님을 어쩌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제가 좋아하는 배우로 제일 먼저 꼽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민정 시인님 1월 『읽을, 거리』에 인터뷰가 이미 고아성 배우님과 인터뷰가 실린 거예요! 1월에 이어 3월에도 나오면 중복이니까, 혹시 웃길까봐…

휘: 부록으로라도 써주시면 안 되나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1월과 3월을 이어주는 다리, 고아성 배우!

신: 묶인 김에 1월 김민정, 2월 전욱진, 3월 신이인 함께 1분기 유닛이라도 만들면 어떨까요… 시의적절 민욱이, 이렇게. (휘: 소녀시대 태티서, 세븐틴 부석순 그리고 시의적절 민욱이…?)

우문 ④

휘: 인터뷰하는 지금, 실은 잠시 후에 ‘경칩 맞이’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준비중이잖아요. 어떠셨어요, 절기라는 시간 단위로 살아본다는 것.

신: 『이듬해 봄』을 쓰면서도 자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절기라는 게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돌아오잖아요. 하루하루 매일매일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절기가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달력 다 뒤져보면서… 3월에 경칩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원래도 개구리를 좋아하지만, 그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거. 아참, 이 레터를 받으실 쯤엔 경칩 맞이 라이브 방송이 끝난 시점일 텐데, 혹시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제가 정말정말 귀여운 (뜨개로 만든) 개구리들을 보여드릴 거고요. 그 개구리들이 여러분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 소중한 뜨개구리들과 가족이 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경칩 맞이 『이듬해 봄』 라방 보러가기

휘: 이인 시인님의 가족 개구리들입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우문 ⑤

휘: 뜨개, 발레, 귀 청소… 취미 부자시잖아요. 시작하는 봄, 3월엔 어떤 ‘부자’가 되고 싶으세요? (아무래도 현금 부자일 수 있지만…)

신: 앗, 제 속마음 어떻게 아셨지? …농담이고 사실은, ‘마음 부자’가 되고 싶어요. 이상하게도 요즘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긴 것 같아요. 20대 내내 안고 있던 불안과 초조 같은 것들이 없어지고요. 진부한 표현이긴 한데, 그래서 올해는 더 마음에 공간이 많은 ‘마음 부자’가 되고 싶어요. 주변 친구들의 어려움들 흔쾌히 들어주고, 만남을 피하지 않고. 아직 30대 초반이긴 하지만 이런 변화가 좋거든요.

휘: 3월의 시인이니까, 아무래도 30대가 잘 맞으신… (신: 역시 3이니까… 삼삼하게… 3은 시작이다…)

발목에 야트막한 빛이 드는 방향으로

가다가

너의 신혼집을 지나칠 수 있다면 좋겠어

 

현관에 어떤 종이 달려 있을까

어떤 소리가 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

살아 있는 기분으로

살 수 있었는데

 

언젠가 보러 가고 싶어

최대한 나중에

 

그리고 반드시

살아 있는 이유가 하나쯤 줄더라도

무섭지 않을 만큼

내가 높고

커져서

 

뒤늦게

많은 것을 들여다보게 되는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