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초록'이 드리웁니다. 뿌리내릴 아주 조금의 흙이 있는 곳이라면 나무는 무성한 잎이 되어 짙은 초록빛 그림자를 늘어트립니다.

  '소만小滿'의 '만滿'은 '가득차다'라는 뜻, 부수를 풀어보면 '물이 평평할 만큼 차 있는' 모양새를 그리고 있습니다. 여름을 알리며 무성해진 녹색 잎을 보면 자연스레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파도와 그 아래 깊은 바다를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색, 녹색. 과학적으로도 녹색은 눈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든 풀과 모든 이파리, 그 녹색 그림자 아래에서는 자기주장이 뚜렷하던 친구들도 경계를 풀고 느슨해지는 것 같습니다. 햇빛은 녹색 그림자가 되고요.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마저 잊고 침묵에 잠깁니다.

  녹음綠陰 아래에서 녹색은 배경이 되어 사물을 어루만집니다. 이 그림자 아래에는 다양한 색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자코테는 『초록 수첩』의 한 장에서 '녹색과 흰색'을 함께 찬양했고요, 배수아 작가의 위 글에서는 "어두운 보랏빛"이 "짙은 초록"과 함께합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또다른 '녹음'이 떠오릅니다. 마침 이 그림자 아래로는 흰빛과 보랏빛이 한 곳에 모입니다.

  등나무 시렁 아래에서는 화장한 여자들 얼굴의 흰빛이 등나무 꽃의 보라색 그늘과 만납니다. 생명의 낯과 죽음의 음영이 어우러지고 그 자체가 아름다운 어떤 것으로 그려집니다. 모두 짙은 초록색의 그림자, '소만'의 충만한 침묵 덕분이겠죠.

  가득한 초록을 생각하며 편집부의 책장을 무심코 봅니다. 난다의 책장에도 초록은 꽤나 흔하고 푸릇푸릇 무성하다 싶지요. 내친김에 난다의 ‘초록 책’들 소개해볼까 하고요.

 

  일단 가장 먼저 와야 할 책 『매우 초록』일 수밖에요. 제법 초록 아니고 너무 초록 아니고 ‘very green’, 매우 초록인 하루들에 대해. 『매우 초록』은 노석미 화가가 서울을 떠나 양평의 땅과 정원과 동물과 사람과 무엇보다 ‘집’을 만난 10여 년, 그의 40대를 담은 책입니다. 물론 그 삶 속에서 비죽 나오고 불쑥 솟아난 초록의 그림들도 나란히 실려 있고요. 초록 또한 백문이 불여일견. ‘매우 초록’의 삶, 그 얼굴은 이렇습니다.

  초록하면 떠오르는 것 아무래도 ‘숲’이겠지요. 도종환 시인이 숲에서 보내온 초록 연서들이 있습니다. 펼쳐보면 이리 쓰여 있어요. “아무도 아프지 마시라, 그 누구도 슬프지 마시라.” 2004년 지병으로 교단을 떠난 시인은 보은 법주리 산방에 머물며 지난 생을 되돌아봅니다. 지나온 곳엔 사막이 있고요. 발바닥 데는 줄 모르고 갈증에 입술 터지는 줄 몰랐던 사막의 날들. 이제 숲속, 청안淸安한 자연 속에서 시인은 새 삶을 일구고 새로이 세웁니다. 그 숲 가운데 새 들고 나비 찾듯 이인 화가의 그림들도 곳곳에 숨어 있답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초대장 받았으니 함께 ‘숲들이’ 나서면 어떠려나요.

  어떤 책은 숲 중에서도 가장 깊은 숲, ‘앎’이라는 숲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컨대 문학평론가 김인환 선생의 『타인의 자유』처럼 말이지요. 사유의 잔치라 할 이 책의 11장 구성은 저마다 독서, 동학, 성찰, 중세철학, 천사, 인문학, 음양, 법, 황현산, 팝, 라캉을 주제어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숲이란 ‘앎의 생태계’ 같은 것인지도요. 그 제목을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에서 따왔다고 하니까요, 이 자유의 숲이란 그 다양성으로도 그 생명력으로도 ‘건강한 지식의 생태계’라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소문난다에 열린 문 있듯 또 초록으로 열린 문 있어요. 반쯤은 닫혀 있나 싶은데 그 너머로 우리 들여다볼 틈 어김없이 내어주는 그런 문.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 박혜진 작가가 52편 작품의 ‘엔딩’을 소개하며 여지없이 열어 보이는 그 문이지요. The end, 그렇게 말하는 데서 문은 아주 닫히지 않는 법이니까요, 우리는 마침내 『이제 그것을 보았어』,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디에나 있지만 번번이 처음이기도 한 ‘끝’의 순간들. 그 끝을 거듭하며 우리는 인생 수업의 “끝내기 기술”을 조금씩 연습해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이 밖에도 난다의 초록 책들은 꽤나, 제법, 아니 ‘매우 초록’하도록 더 있는데요, 이를테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초판이라거나 제목부터 초록의 다른 이름 알려주는 『마음과 엄마는 초록이었다』 같은 책들이요. 시의적절 5월 오은 시인의 『초록을 입고』 빼놓을 수 없고요. 유독 푸릇푸릇 초록 얼굴을 한 책들 많은 것은 그 푸름이 씩씩함이어서, 무성함이어서, 자라남이어서 아니려나 생각해봅니다. 가장 편안한 색 초록, 가장 가득하여 가장 기특한 색 초록이기도 할 테지요.

  초록이 꿈꾸는 바다, 초록을 부르는 숲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요, 자연히 노래 한 곡이 떠올랐어요. 추천인 아이유, 김범수, 김창완… 일명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로 주목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의 <숲>이라는 곡입니다.

 

  물론 냉큼 귀를 사로잡는 음색과 잔잔히 오래 남는 멜로디로 곡의 매력 이미 충분하지만요, 실은 소위 ‘쉽지 않은’ 가사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니! 하는 감탄을 했던 거지요.

  아름답기로 소문난 가사를 쓰는 아티스트 많이 있지만요, 이런 가사를 곱씹다보면 ‘시적’이라 하기 모자라 그 자체 시로 읽는 편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너무 팬심 앞세운 해석일까요? 하지만 아닌 게 아니라, 읽는 일에도 열심인 그는 팬들을 위해 책, 특히나 시집 추천꙳을 종종 해주곤 해요. 읽는 마음과 노래하는 마음, 듣는 마음과 쓰는 마음. 이 반가움이란 아마 여전히 시를 뒤적이고 어떤 밤을 뒤척이는 이들의 느슨한 공감대라 해두면 좋지 않으려나요.

꙳ 추천 도서 목록에 난다의 책이 두 권이나 있어 반가웠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황현산의 사소한 부탁』(황현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이규리) 같은 제가 사랑하는 책들도 있고요. 듣는 이들과 읽는 기쁨을 나누는 일, 응원해봅니다!
 👉🏻 최유리의 'ㅊㅊㅊ(책추천)'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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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완독챌린지 독파에서 매달 '시의적절'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어요. 다가올 6월에는 오은 시인과 5월을 돌아보며, 나를 돌보아 살피는 편지 쓰기 챌린지를 함께합니다. 미션에 열심 성실 참여해주신 분들께는 추첨을 통해 라미 만년필🖋과 오은 시인의 친필 답장✉도 선물한다고 하니까요, 지금 바로 독파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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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nandaisart 계정을 태그하고, 필수 해시태그를 달아주세요. #보름챌린지 #초록을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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