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芒種입니다. 어쩐지 무언가 망하고 끝날 것만 같은 어감이지만…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뜻하는 망芒과 씨앗을 뜻하는 종種을 합쳐, ‘씨 뿌리기 좋은 때’라는 의미라고 해요. 실제 농가에서는 이른봄에 파종한 햇보리를 수확하고(보리베기) 어느 정도 자라난 볏모를 논에 심는(모내기) 때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일이 많고 바쁜 때인지라, 황망하여 망忙종, 할일들 깜빡깜빡한다 하여 망忘종이라는 농담도 있지요. 부쩍 여름이다 싶게 날도 더워졌으니 이것은 어쩌면 졸음과 시름 사이…

 

  그런데 또 그런 생각도 듭니다. 6월이니 한 해의 절반, 그러나 이제 씨를 뿌린다는 것. 일로도 계절로도 삶으로도 한창인 6월, 앞으로의 ‘한참’을 준비하는 그 시작을 두고, ‘한창’이라 불러보면 좋겠습니다.

  한 편집자의 마음에 들어온 글이 책이 되어 출간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해외문학으로 보자면 기획으로 시작하여 원저작사 오퍼, 역자 미팅, 원고 입고, 교정, 디자인 등등…… 각 단계는 한없이 길어지기도 하고 선형적이어야 할 단계는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가 되기도 합니다. 2~3년도 예사로이 지나가고요. 그러니 편집자가 동시에 독자라면 아주 오랫동안 한 편의 예고편을 반복해서 보며 본편을 기다리는 열혈 독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참'이 '한창'과 구별되지 않는 시간을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고요.

  제가 『사랑』이라는 작품을 만난 것은 대략 1년하고 몇 달 정도 전이니 아주 긴 예고편은 아니었겠다 싶습니다. 저와 『사랑』의 만남은 이 작품을 번역해주신 장승리 시인 덕분이었습니다. 장승리 시인은 저보다 먼저 이 작품에 매혹된 한 사람이었고 머지않아 저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 번 읽었고, 잠시 후 다시 한번 더 읽었고, 잠시 시간이 지났는데도 매혹은 여전했습니다. 그렇게 출간이 결정되었습니다.

  무언가에 매혹된 사람은 '이곳'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먼 곳'에 도달해 있습니다. 말의 리듬은 달라지고 눈빛은 아주 멀리 바라보는 듯 혹은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듯합니다. 그는 여전히 여기 있지만 말로 할 수 없는 그의 무언가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사랑』은 '시적인 소설' '시 같은 소설'이란 수식어조차 필요 없는, 차라리 소설을 가장한 시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시가 무엇일지…… 답할 능력을 초과하는 질문이지만 『사랑』을 읽으며 저는 시가 언어를 통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의 이른 독자로서 저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시적인 특성에 매혹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합니다. 이야기는 '에스탈라'라는 바닷가 마을 근처를 배회하는 익명의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그립니다. 놀라운 것은 글의 환기력입니다. 읽다보면 존재하지 않는 바닷가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감정이 마치 내 것인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바닷가는 뒤라스가 보았을 프랑스적 풍경이 담긴 바닷가도, 제게 익숙한 한국의 어떤 바닷가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모든 바닷가 너머에, 그 모든 바닷가가 윤곽도 없이 사라진 후 또다른 바닷가가, 마치 음악처럼 고요하게 나타납니다. 그 제3의 바다에서 뒤라스의 글과 읽는 저 사이에 사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그렇게 같이 슬퍼하고 웁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물질적 삶』, 윤진 옮김, 민음사, 2019, 134쪽.

  지난 1년 동안 『사랑』을 펼치며 다시, 바다 앞에 선지도 수차례.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을 펼치면 어김없이, 그 이름 모를 바다 앞에 섭니다. 한편 뒤라스는 첫 작품을 쓴지 30여년 후, 『사랑』을 쓰며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미 시작한 후에 비로소 시작한다는 느낌, 한창이 한참 지나 다시 한창을 감각하는 경험, '이미' 같은 단어가 '여전히' 같은 단어와 섞이는 공간 속에 존재하기, 모두 『사랑』이 그리는 것들입니다.

  시의적절 시리즈에도 어김없이 6월이 찾아왔습니다. 서효인 시인의 6월, 『좋음과 싫음 사이』. 한 해의 허리쯤 왔으니 시작과 끝의 사이, 봄과 여름의 사이. 이맘때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다 싶지요.

 

  서효인 시인은 편집자이기도 한데요, 안온북스라는 멋지고도 다정한 서가를 꾸려나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필연, 우리네 모두 그렇듯, 생활인으로서의 모습도 책 속에 담겨 있지요. 『좋음과 싫음 사이』의 원고를 처음 받고 깜짝 놀랐다 할 정도로, 한 사람의 삶의 궤적들, 유년의 기억부터 오늘의 시름과 앞으로의 고민들이 가득 담겼습니다. 그도 그렇겠구나 합니다. 좋음과 싫음 사이에 있는 것, 삶일 테니까요. 혹은 삶이란 내내 좋음과 싫음 사이를 오가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테고요.

  마흔이 넘었으니 이제 생의 절반이나 왔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평균이라는 걸 따져보니 얼추 그렇다. 지난 절반을 바라보며 용감해졌다. 앞으로의 절반을 내다보며 무쌍해지려 한다. 그다음 다시 손을 펴볼 일이다. 무엇이든 묻어 있으면 좋겠다.

─본문 중에서

  편집자로서는 이런 원고를 만나면 고맙고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서른 편의 서로 다른 글, 와중에 시, 산문, 인터뷰는 물론 짧은 소설까지 망라한 다채로운 형식을 엮어내는 가운데 ‘삶과 사이’라는 통찰, 단단한 주제로 한 권의 책을 꿰뚫는다는 것. 편집자이기 이전에 독자로서, 너무나 자연스레 또 맞춤하게 흘러가는 구성과 세심히 안배된 요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답니다.

 

  예컨대 마침표를 찍지 않는 시들. 쉼표로 끝나거나 때로는 종결어미 없이, 허리가 뚝 끊긴 듯한 문장들. 처음 원고를 받고서는 순간 파일이 잘못 온 줄 알았다가, 몇 편의 시들을 죽 읽어나가면서 무릎을 탁 쳤답니다. 이어질 듯 끊어진 시가 끊긴 듯 이어지는 우리의 날들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남은 이야기가 있는 거지요. 그 모두 끝없고 어김없는 질문들이어서, 답과 답 아닌 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혹은 우왕좌왕 흔들리거나 흐르거나 하는데요. 그러나, 그러므로 다음이 있는 것이겠지요. 좋음 혹은 싫음으로 딱 떨어지지 않고 뚝 맺지 않는 질문으로 시인은 다음을 살고 다음을 씁니다.

 

  망종이기도 하니까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첫째 은재를 생각하며 쓴 글인데요. ‘말이 씨가 된다’고 할 적에, 노래의 씨앗, 춤의 씨앗,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말이 되는 씨앗을 상상해봅니다. 때로는 싫어도 기어이 좋은 것이 삶. 가끔은 슬플 테지만, 그래도, 그래서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상상하거나 걱정하듯 저 또한 그렇습니다. 은재가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무엇을 할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엊그제에는 은재 학교 숙제로 가족들의 응원 메시지를 쪽지에 적어 오는 게 있었어요. 그걸 학교 복도에 설치한 희망 나무에 건다고 하더군요. 저는 거기에 은재야,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하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은재에게 말하니 은재가, 이 써! 노래하듯 따라 합니다. 그러면 저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모든 게 노래가 되면 좋겠습니다. 은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의 무엇이든 말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노래일 수도 있겠죠. 그럼 우리는 서로를 노래하듯 부를 텐데요, 마치 은재가 아빠를 부르는 것처럼. 수만 가지 멜로디와 리듬과 화음을 갖고서요. 적당한 몸짓도 섞어가면서. 그건 춤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참 귀할 것 같습니다. 그것참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가끔은 슬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이 노래라면, 시가 노래라면, 우리가 노래였다면.

─본문 중에서

• 이제훈 배우님과, 만난다?! ❤️‍🔥
  
  여러분 이제훈 배우님이 유튜브를 시작한 것 알고 계셨나요?
  극장과 영화를 사랑하는 제훈씨의 특별한 여행 <제훈씨네>가 세번째 여행지로 제주를 찾았는데요, 곳곳에서 난다와 반가운 만남 담겼지 뭐예요 (실화입니까...)

  독립 단편영화 전문 상영관 '숏트롱시네마'에서 고희영 감독님의 <물꽃의 전설>을 감상하고 배우님과 감독님의 만남까지 이루어졌어요.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고희영 감독님의 깜짝 선물!

  영화관으로 가는 길에 들른 금능리 유일의 책방 '아베끄'에서는 『너랑 나랑 노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만날 수 있었고요.

  반가운 얼굴 반가운 책들과 이제훈 배우님의 만남! 지금 확인해보셔요 ☺️
  
  

•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6월의 플리 📻
  

  6월에도 시의적절 플레이리스트가 찾아왔어요 😍

  서효인 시인이 직접 꼽은 30곡의 음악과 함께 하루를 읽어나가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장르 다채로운 선곡이었다는 후문…

  (???: 잡덕 감성 모르면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