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더위, 소서小暑입니다. 아무래도 여름인 거지요. 지난 레터에서 예고했던 대로, 소문난다는 짧은 방학을 보내고 있답니다. 다만 여전히 열린 문으로 여름도 소문도 솔솔 불어오고 있음에, 어쩌면 더 큰 문, 대代문난다를 마련해보았어요.

 

  소문난다 두 에디터의 피서를 응원하며(!) 신이인 시인과 두 독자님이 전해온 편지를 띄워봅니다. 저희는 요 편지들 슬쩍 먼저 사랑이라 읽었습니다. 다들 그리해주실 테니까요!

  안녕하세요. 그동안 소문난다를 받아보며 ‘참 고급지고 유려한 절기 알림이로다. 난다 편집자 선생님들은 아는 것도 많고 재주도 많으신갑다’ 생각해왔던… 지나가던 사람 1, 신이인입니다.

 

  잠시 방학을 맞은 소문난다가 대문난다로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전 어딘가를 열심히 지나가는 중이었을 거예요. 보자… 더워지던 즈음에 어디 어디를 다녀왔더라? 파주 사는 친구의 빈집이었을 수도 있고, 낯선 사람들과 무릎을 붙인 뚝섬한강공원의 돗자리 위였을 수도 있고, 이태원의 공연장이나 서울국제도서전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모두에게 건네는 편지처럼 두루뭉술한 다정 속을 지나치기만 했던 제가 <편지 대신 전해드립니다>의 필진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언젠가 동휘 편집자님께서 말씀해주셨으나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하마터면 농담 중독 양치기 소년의 슬픔을 체험시켜 드릴 뻔)! 아무튼, 오히려 좋아.

 

  최근 드랙 공연을 보러 갔다가 인터미션 때 스테이지로 내몰리게 된 바 있었는데요. 저는 갑자기 등 떠밀어주는 상황이 오면 어깨춤도 추고 트월킹도 하는 사람이었지 뭐예요. 이런 말 하면 나중에 꼭 보여달라는 사람 있는데, 절대 보여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하. 농담. 트월킹은 할 줄 모릅니다. 그만큼 신나게 프리스타일로 편지를 쓰고 있다는 얘기랍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수취인불명>이라는 노래를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생각난 김에 지금 틀어보았는데 적당히 추적추적한 것이 요즘의 조도, 온도, 습도와 잘 맞네요. 학창시절엔 왜 이렇게 눈물 젖은 노래를 들었을까요. 지금은 자극적인 비트의 케이팝에만 구미가 당기는 어른이 되고 말았지만요.

 

  장마철이에요. 그렇게 덥지도 않고, 하늘은 종종 가을처럼 맑아 보였고요.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가 빗소리에 깨서 창문을 닫는 날을 반복해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팽팽한 바람 소리에 깨어 잘 안 닫히는 창문을 어렵게 닫기도 했어요. 소서가 왔다더라고요. ‘작은 더위’라니, 내 스타일이다. 사실 내 기준엔 너무 작은 더위 같지만.

 

  여러분은 여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매년 여름을 좋아했어요. 한 해도 거르지 않았을 겁니다. 보통은 왜, ‘여름 좋아 겨울 싫어’ 인간과 ‘여름 싫어 겨울 좋아’ 인간이 나뉘잖아요. 저는 ‘여름 영원해 겨울 사라져’ 인간입니다. 여름뿐인 남쪽 나라에 가서 영영 살아버리는 상상도 해요. 365일 슬리퍼랑 샌들만 신고 스콜 왕창 맞으면서. 고온다습할 때 살아나는 잎 큰 나무들에게 동류의식도 느끼면서.

 

  그간 소문난다에서는 좋은 것 이것저것 많이도 권해주셨어요. 제가 너무 빈손으로 왔다 가면 애독자 분들이 아쉬워하실 것 같아요. 꼭 책이어야 한다는 법이 없다면, 영화를 하나 소개해 드릴까요? 2021년에 개봉한 <생각의 여름>이라는 영화 포스터가 아까부터 아른거렸어요. 포스터가 수박 무늬이기 때문이겠죠.

  작년 어느 날은 친구가 각자 읽은 책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는 건 어떤지 먼저 제안을 해주었어요.『읽는 사이』를 읽다가 제 생각이 났다면서요. 그렇게 처음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당시 ‘난다 여름 시 학교’를 열심히 다니던 시절이라 신나게 시 이야기를 하고, 후반부에는 진은영 시인의 「그러니까」의 한 구절처럼, ‘시와 함께라면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서,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시를 읽고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다니는 것 같다’는 내용을 남겼습니다.

  친구는 시에 대한 사랑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게 아쉽다는 답장을 보내주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와 그 구절들 또한 제게 끊임없이 구애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고, 내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라고요.

  생각해보면 사실 ‘짝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로 저의 나약하고 수동적인 비겁한 태도를 감싸려던 건 아니었을까 합니다. 북토크를 처음 다니던 시기엔 시인들께 시를 더 잘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꼭 질문을 했었습니다. “서점에 자주 가보셔요!” 하던 양안다 시인의 답변이 기억납니다. 저는 시에 담긴 마음을 깊게 들여다볼 노력 대신, 그저 시가 먼저 다가오기만을 바라는 게으른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시의 손을 잡고 무수히 많은 시간을 무사히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에 대한 고마움과 시로 인해 풍족해진 마음을, 더 많은 분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때로 지치고 꾸준하지 않아도 부디 끝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그 마음 가득 담은 진심을 보냅니다.

  2020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기, 인생 최초로 덕질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최애’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 손편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입덕 초기에는 2~3일에 한 번씩 편지를 쓰곤 했다. 어디에 털어놓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을 라디오에 사연 보내듯 그에게 보냈다. 편지를 쓰고 나면 마음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무언가가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았다. 그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 생긴 많은 변화와 쌓여가는 행복에 대해서도 적었다. 편지를 쓰는 동안 행복은 두 배가 되었다.

  그가 ‘뒤처진 걸음’으로 팬들의 편지를 조금씩 읽어나간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그 많은 편지를 다 읽지는 못할 테니까, 내 편지들도 모두 읽히진 않을 거라 생각하며 사소한 이야기까지 편하게 써내려갔다. 그저 편지를 쓰고 그에게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런데 그가 1년 전 입대를 했다. 어디로 편지를 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소속사로 보내자니 주인 없는 방에서 몇 달 동안 외롭게 그를 기다릴 내 편지들이 안쓰러웠다. 여느 때처럼 써내려간 편지들이 갈 곳을 잃고 말았다. 편지가 하나둘 쌓여갈수록 이야기들이 그에게 전해지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난다가 진행한 ‘은쪽상담소’에 그의 입대로 마음이 허전할 것 같다는 사연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오은 시인이 추천해준 책이 『매일같이 명심보감』이었다. 감정을 조절해야 할 때, 결핍감이 느껴질 때,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할 때 기댈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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