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小暑에 이어 어느새 자라난 더위, 대서大暑입니다. 더위만큼이나 큰비가 연이어 내리는 날들이네요. 무탈하시기를, 무고하시기를. 일상에서라면 큰일 대신 소소하거나 소박한 행복만 가득 쌓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문난다의 짧은 방학 대代문난다 두번째 시간, 오늘은 고명재 시인과 독자님의 편지를 전해드려요.

  안녕하세요. 난다 독자 여러분. 난다를 사랑하는 고명재입니다. 대서大暑에 대문난다를 맞게 되어 행복해요. 저는 손이 큰 사람들 밑에서 자랐어요. 도시락 뚜껑이 터질 듯 채워주거나, 봉지가 찢기도록 자두를 넣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밑에서 자라다보니 음식을 시켜도 이왕이면 대大 자로 시켜서 먹어요. 커다랗고 큼지막한 것들을 좋아해요. 그게 마음이고 한아름의 양팔 같아서요. 얼마 전엔 난다의 열세번째 생일 파티에 갔다가 난다가 준비한 선물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온갖 선물을 주렁주렁 들고 집으로 오는데 정말 손 한번 크네! 속이 다 시원하네! 생각했지요. 큰 손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요. 사랑의 샅바를 꼭 쥐고 싶어요. 그래서 대서엔 큰 것들만 보려합니다. 가만히 大 자를 보고 있으면 온몸을 펼친 누군가의 최선이 보여요.

  그러니 대서엔

  대 자로 찾아오세요.

  양팔 쫙 벌리고

  최대로 곧장 오셔요.

  얼마 전엔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이런 시작 메모를 써두었답니다. 「씨름」이란 제목을 붙여보기도 하고 ‘샅바’와 ‘맨몸’의 이미지를 덧붙였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존재를 가늠하는 일. 힘과 힘으로 모래 위에 마주 서는 일. 아- 대형견처럼 대접처럼 당신이 왔으면. 굵직한 끈으로, 구명줄처럼 빛이 왔으면. 거대한 느티나무 사이를 속속들이 꿰고 오는 빛처럼. 광량이 엄청난 여름의 찬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크게 왔으면.

  대서, 대문, 대륙, 대교, 대청, 대가족. 이런 말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존재가 팽창하는 느낌이 들어요. 과일도 나무도 여름엔 최대가 되죠. 존재적 정점이 바로 한여름이죠. 그래서 제게 대서는 이런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살이 찌는 이미지죠. (비만은) 느린 파도이지요.

  비빔밥을 양푼에 싹싹 비벼서 숟가락 위에 북한산처럼 쌓아 얹은 뒤 와악- 하고 입 벌리는 소년이 보여요. 그 소년 곁에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요. 우적우적 모두가 나물을 씹고요. 허벅지가 장판에 붙어 땀이 느껴집니다. 바람이 부네요. 배가 부르고 입가를 훔쳐요. 소년은 피둥피둥 살이 오를 테지요. 쓰다보니 시가 쓰고 싶어집니다. 가장 느린 파도. 씨름과 맨몸. 대접과 대서. 커다랗게 담긴 몸과 나물들의 정점.

*

  어떤 말이나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으면 저는 꼭 해당 낱말을 네이버 한자사전에 들어가서 그 말이 만들어진 연원을 봅니다. 깨알 같은 발견이 늘 있고는 하는데요. 이번에는 대서를 검색했어요. 얼마나 재미있는 연원이 있는지, 저랑 한번 같이 보실까요.

  더울 서暑 자는 해日 밑에 서 있는 사람者을 뜻한다 해요. 불볕더위! 그 자체의 이미지죠. 그런데 자원字源에 관한 설명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이 사람 자者 자는 사실, ‘사탕수수의 수액이 흐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나요. 식물이 흘리는 땀이라니! 그것이 달다니! 이런 아름답고 매혹적인 땀이 또 있을까요.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 우리는 식물의 땀을 그리 길게 오래 핥으며 달콤한 음료들을 만든 거군요.

  최근에는 여름에 관한 긴 글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느리게 여름의 감각을 마음속에 저장해두고 있어요. 그런 와중에 여름이야말로 사계 중에서 가장 ‘현재적’이고 ‘순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땀 때문에요. 여름은 땀의 계절이니까요!

  땀은 (마치 통증처럼) 끝없이 ‘현재’를 자각하게 해요. 특히 한여름, 한참 뙤약볕 밑을 지나온 뒤에 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때면, 등이나 겨드랑이 혹은 둔부와 같은 몸의 다양한 국부들을 지각하게 되어요. 평상시에는 의식되지 않았던 내 몸의 곡면이 땀으로 인해 예민하게 의식되는 거지요. 그럴 때 저는 ‘여름’을 깨달아요. 여름은 ‘존재한다는 실감’이구나.

  맞아요.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건 땀 흘리는 일이고 엄청난 노력의 결과예요. 지금도 우리 몸은 에너지를 만들고 있어요. 여름은 나의 열량熱量을 새삼 느끼게 하지요. 저는 그래서 땀 흘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요. 어쨌든 그 몸은 ‘존재하기’를 포기하지 않은 거잖아요. 그래서 땀은 성실과 노력의 상징이기도 한가봐요.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사이에도 존재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던 거예요.

  그러나 역시나 땀이 많이 흐를 때는 정말이지 힘이 듭니다. 등뒤가 어쩐지 축축하거나 무릎이 접히는 부위에 스르르 땀이 고일 때. 그럴 때 저는 흐르는 ‘땀’을 ‘땀방울’이라고 불러요. 그러면 좀, 견딜 만한 것이 되는 것 같아요. 땀방울. 땀방울. 땀에 방울을 더하면 그것은 흐르고 리듬을 지닌 골똘함이 되어요. 동그란 땀방울이 귀 옆으로 흐르면 또르르르 느껴지는 내가 있어요. 동글동글한 땀방울. 나의 눈부신 존재감. 계속해서 살아가려는 골똘한 자세들.

  그나저나 사탕수수의 땀은 달콤한데, 우리의 땀은 왜 짤까요. 어쩌면 몸이 기억하는 걸까요. 우리가 태초에 바다에서 올라온 맨몸이었다는 것을요. 아니면 소금은 물에 녹아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부피는 결국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우리는 모두 마법처럼 사라져 세상에서 깡그리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 형체-없음 앞에서도 바다는 굳건히 존재하겠죠. 짙푸르게 소금을 품고 존재하겠죠.

  맨 처음 바다에 갔던 때를 기억합니다. 바싹 마른 소년이었을 때인 데요. 아빠 손을 꼭 잡고 감포에 갔어요. 바다에 들어갈래? 응! 아빠가 저를 휘휘 들고서 바닷물로 풍덩 던져버렸어요. 그때 입속으로 밀려드는 엄청난 짠맛. 존재하는 것. 존재하는 것. 사라지는 것. 심장이 쿵쿵 뛰고 서러웠어요. 행복했어요. 찬란했어요. 보고 싶어졌어요. 미래에 죽을 내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땀맛이, 그 육체들이 입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손 모아, 고명재 드림.

  계절은 ‘지난 계절’로부터 ‘지난할 계절’을 마중합니다. 여름 같던 봄을 지나자마자 무더운 낮과 세차게 무서운 긴 비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 해의 반을 지나, 더욱 뜨거운 시절을 맞이합니다. 여름 날씨의 문턱은 낮고도 높아, 우리가 넘기도 하고 때론 엎어지기도 하나봅니다. 이번 폭우에 교량 상판이 침하한 유등천 근처, 낡은 주택에 사는 저는 벽을 타고 스며드는 꼬리 긴 비를 환기와 제습으로 견뎌내고 있습니다. 부디 폭우와 강풍으로 인한 피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절기 편지 대문난다의 독자 집필진으로 참여하게 된 팔방미인국어샘입니다. 오늘은 1년 24절기 중 열두번째 절기인 대서입니다. 글자 그대로 ‘큰 더위’를 뜻합니다. 이때를 중심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지요. 대서는 소서와 입추 사이에 있는 절기로서, 장마 후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무더운 시기입니다. 마치 중년의 문턱을 넘으며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우고 있는 저의 핫! 뜨거운 시절처럼이요.

  저는 요즘 기록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평생교육 현장에서 선배 문인이자 전문 소양을 갖춘 교수자로서 문학을 지도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수업을 들으며 영상을 촬영하여 각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에 수업 동영상을 게시합니다. 특징이 드러나도록 썸네일을 구상하고, 동영상을 보기 좋게 편집해서, 한번에 볼 수 있을 양만큼 유튜브에 게시해놓습니다. 당일 수업 결석자나 복습이 필요한 학습자, 여러 사정으로 인해 평생교육의 장에 나오지 못하고 현업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교육 참여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저는 수업 영상을 편집하며 덤으로 콘텐츠 구상 및 영상 편집 능력도 쌓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은 저에게 참 뜻깊은 계절입니다. 계간 문예지에 신인상 응모 작품을 출품했기 때문입니다. 2018년부터 ‘시요일’ 앱에 꾸준히 기록한 창작 시 50여 편을 그러모아 수없이 퇴고하던 중, 더는 미루지 않기로 다짐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시를 그러모으는 이 사람’은 난다에 진심인 독자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소비자입니다.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빌려 보지 않고 ‘내돈내산’으로 소장하는 독자이고, 비록 여건이 안 돼 북토크에 못 갈지언정 자신의 채널(블로그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 전국 각지의 시의적절 북토크 소식을 매월, 매번, 참여 시인별로 열심히 퍼나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요즘 시의적절 시리즈의 여섯번째 주자 서효인 시인의 『좋음과 싫음 사이』를 다시 읽으며 7월 독파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을 읽고 인상 깊은 문장을 필사하고 있고요. 2024년의 후반기, 그 출발선인 7월을 살며, 지나 보낸 시간을 성찰하고 마주할 시간에 대한 포부를 다짐해봅니다. 마흔셋, 시가 좋아서 읽고 쓰며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선생님’은 이미 시인이라고 응원해주던 학생들의 인사에 먹고사는 걱정을 미뤄두고,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당겨와 도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름 볕과 긴 비에 무럭무럭 자라는 풀, 꽃, 나무들처럼, 저는 무순위 고명재 시인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북토크 시청에서부터 1월 김민정, 2월 전욱진, 3월 신이인, 4월 양안다, 5월 오은, 6월 서효인, 7월 황인찬 시인에 이르기까지 난다의 품에 기대 ‘시의적절’하게 ‘시앗’을 키웁니다.

  채우지 않고서는 잘 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출판, 중등 국어 교사, 이 경험을 멈추고 연봉과 바꾼 ‘꿈’, 그 시간을 잘 엮어 부모님이 딸 걱정 안 하셔도 될 시인, 가족이 이사할 다음 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단단한 삶을 이뤄가고 싶습니다. 지난겨울 ‘학교 밖 국어 교사’를 꿈꾸던 제 꿈은, 도전하는 만큼 더 가까워졌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는 말을 늘 새기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사람이기에 보통의 일상을 살며, 현상 유지에 급급하여 실패하지 않는 삶에만 안주하지 않겠습니다. 제 삶을 개척하는 탐험가가 되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태어난!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 안에서 겪게 될 결핍의 역사도 잘 극복해내겠습니다.

  ‘오늘도 하루, 감사에 저축’합니다. ‘시의적절’한 만남, 독자 집필진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시인보다 먼저 도착한 ‘시상’ 한 부분을 저와 함께 기억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 2024 편집자는 책으로 난다📚
  
  📽️여름 극장에서 펼쳐지는
  8인 8색 8강 난다의 여름편집자학교🤗
  
  
  편집자 8인을 모시고 오늘날 책을 만드는 일의 의미,
  독자와 저자 사이를 연결하는
  편집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아직 여섯 편집자의 수업이 남아 있어요!
  
  3️⃣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4️⃣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5️⃣ 김필균 문학과지성사 편집장
  6️⃣ 김민정 난다 대표
  7️⃣ 김동연 프란츠 대표
  8️⃣ 김현우 읻다, 나선에이전시 대표
  
  매주 일요일, CGV 청담씨네시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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