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이 있지요. 인생은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와 “해야지… 그런데… 어떻게?”의 핑퐁이다. (제가 방금 만든 말이긴 한데요…) 어쩌다보니 휴일이 잦은 10월이에요. 퐁-당-퐁-당 평일과 휴일이 반복되는 두 주를 보내고 있자니 의지랄지 기력에도 낙차가 생기는 것 같고요. 이 마음의 갈팡질팡, 환절기를 탓해볼 수도 있겠지만요.

  온도차와 그 낙차. 한로寒露인 오늘 찬이슬 맺히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영원할 것 같던 여름도 어느새 가고 없는 기분입니다. 늦여름이랄지 초가을이랄지, 그 중간 어드메의 날씨 또한 퐁당 건너뛴 것 같고요. 긴팔 셔츠‘만’ 입기 적당한 날이란 것도 그러해서, 가방 속 외투 하나 정도 대비는 꼭 필요한 날씨입니다.

  임유영 시인이 그러더라고요, “살면서 나처럼 절제력, 인내력, 통제력 부족한 사람도 몇 못 봤지만”… 그리고 생각하는 거지요. 혹시 그 ‘몇’에 제 이름이 올라갈 여지가 있나요…?

 

  생각하면 이상한 일. 저는 아시아홍조증후군을 보유하고 있는… 그러니까 술 못 마시는 ‘알(콜)쓰(레기)’인데요, 시의적절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속 임유영 시인의 고백에 자꾸만 이입하고 있으니까요. 살면서 가방에 술을 숨겨본 적도 없건만…

  물론 책장을 넘기면 알게 됩니다. 꼭 술 얘기만은 아닌 거지요. 무언가에 중독되었거나 중독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한쪽을 골라야 한다면, 나 역시 별수없이 무엇에 중독인 사람이라는 것. 예컨대 코트에 와글와글 모여 OX 퀴즈를 하고 있다 상상해보자면요, 중독O와 중독X 중 고르라 할 적에 눈치보며 O쪽으로 터벅터벅 걸음 옮길 제가 있지요.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나요? 고개 들어보면 텅 빈 X 두고 다들 O쪽에 서 있는 것 아닐까…요?

  가끔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한국지부 홈페이지에 기어들어가 “A.A.는 당신을 위한 것인가?”로 시작하는 소개글을 읽는다. (…) 이들은 한번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은 결코 음주량을 자발적으로 조절할 수 없으며, 술에 대해서는 중독되었거나 중독되지 않았거나 중 하나의 상태만 가능할 뿐이라고 단언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무언가에 중독되었거나 중독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한쪽밖에 고를 수 없다. 한번 중독되면 멈출 수 없으며 멈출 수 있다면 중독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라 일찍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희망이구나, 희망. 중독은 희망이구나.

  시인은 (일단) 오늘도 다짐합니다. 주정뱅이(?)의 곁을 지켜준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내 올해는 반드시… 하지만 덕분에 당신들을 만난 것 또한 사실이지요. “술보다 좋은 게 있는 것도 같아. 진짜 그건 그런 것 같아”, 알게 해준 것 또한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핸드백에 술은 숨겨도 마음은 숨기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 숨김없이 꺼내는 마음과 남김없이 주는 사랑, 어김없이 쓰는 일상과 틀림없이 함께인 사람들 말이지요.

 

  내친김에 슬쩍 중독과 희망의 자리를 바꿔봅니다. ‘희망은 중독이구나.’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은 버릇뿐 아니어서, 내버릴 수 없는 희망과 저버릴 수 없는 삶을 계속해나갈 테지요. 도무지 가망도 차도도 안 보이는 나의 버릇들 후회처럼 떠오를 때, 환절기 알레르기성 비염을 핑계 삼아 크게 숨 한번 들이마셔봅니다. 그러면 무슨 냄새가 나는 것도 같습니다. 마음에서 불어온 그것, 10월의 냄새겠지요.

  다음 시집에선 보이지 않는 것들, 안 보이면서도 확실히 거기에 있는 것들에 대해 집중하고 싶다. 냄새, 기운, 공기, 느낌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 만약 이 책에서 술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당신의 마음에서 나는 냄새다. 10월의 냄새다.

  아무래도 요즘 대세 콘텐츠라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인 듯하지요. 인기만큼이나 경연 속 요리를 직접 맛보고픈 우리의 마음도 한껏이어서, 출연진 셰프들의 식당 리스트는 물론 위치를 표시한 지도도 공유되고 있어요. (🗺️지도는 여기!)

 

  그중에서도 서촌에 위치한 두 가게, 도량과 오쁘띠베르를 특히나 반가움으로 맞았어요. 난다 식구들이 뜻깊은 날 모이곤 했던 두 식당인 까닭에요. 그러니까 ‘철가방요리사’ 임태훈 셰프의 첫 요리였던 팔보완자, 저는 먹어보았다는 뜻(그리하여 자랑이 맞다는 뜻)… 그 맛은 제가 구태 보탤 말 없을 테지만, ‘도량’이라는 그 이름이 맞춤한 그릇이다, 소회는 그렇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비웠지만 도량의 세컨드 브랜드 이름은 ‘아량’이었으니… 역시 더 보탤 설명 없겠지요?)

  박준우 셰프의 카페 이름 역시 참 적절함에요, 오쁘띠베르Aux Petitis Verres는 프랑스어로 ‘작은 유리잔들’을 뜻한다고 해요. 작은 잔 속 다양하게 담긴 맛들이 있겠지요. 사실 그 투명하고 동그란 이미지를 생각하다 오늘 한로에 꼭 소개하고팠던 것이기도 하고요.

  오쁘띠베르의 오종종 다종다양한 디저트들 중에서도 저는 메르베이유를 참 좋아합니다. 프랑스어로 ‘멋진, 굉장한Merveilleux’을 뜻하는 메르베이유이지만, 박준우 셰프는 오쁘띠베르의 메르베이유를 두고 지극히 ‘시골풍’이라 소개해요.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의 전통 디저트인 메르베이유는 가벼운 머랭과 크림 등 간단한 재료로 만들어지는데요, 한데 어쩌다 그런 굉장한(?) 이름이 붙었을까 의아할 즈음, 박준우 셰프의 설명에 단박 납득이 되는 거지요. 그 전통과 역사만큼, 아주 오래전 이 디저트를 ‘처음’ 맛본 사람들에게서 터져나왔을 그 감탄을 떠올려본다면요.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이 놀라운 화제성에 짐작해볼 인기 요인은 많겠지만, 그중 흑-백 ‘계급 전쟁’으로 시작해 소위 ‘계급장 떼고’ 맞붙는 투명함의 미덕 또한 있겠지요. 그렇게 더께 없는 투명함으로 만날 때에야 순순히 또 순수히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감동이 있겠지요.

 

  작은 유리잔 뽀득뽀득 닦듯 마음의 때 걷어내봅니다. 동그란 이슬은 확대경이기도 하니까요. 그 투명함 속에 깊은 도량도 너른 아량도 담기겠습니다. 투명해야 담기겠습니다.

• 10월의 냄새 가득한 플레이리스트 📻
  임유영 시인이 직접 꼽은
  얼큰하고도 덜큰한 10월의 플리!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따라 읽으며
  하루 한 편, 하루 한 곡 함께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