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내리니 상강입니다. 수증기가 곧장 얼어(승화) 만들어지는 서리이니 따지고 보면 하늘에서 오는 것은 아닐 텐데 서리를 두고 ‘내린다’고 말하는 것이 문득 의아하긴 한데요, 단풍잎 위에 뽀얗게 덮인 서리를 보고 있자면 사뿐 ‘내려앉았다’, 그렇게 말하는 마음 알게도 됩니다. 작고 잘지만 엄연히 얼음인 서리이니, 이제 얼음의 계절도 시작이지요. 겨울나기를 대비하는 손들 바빠집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 또한 긴 잠에 들기 전 힘도 꿈도 비축해둘 때고요.

  아직 기온은 채 영하를 밑돌기 전, 그러나 나무의 잎이나 유리창처럼 찬 표면의 온도가 물의 어는점 이하일 때 서리가 내립니다. 간신히 지켜낸 어떤 비밀처럼, 어느 새벽 뽀얗게 내려앉은 서리의 막. 손 닿으면 스르륵 녹아내려 사라지는 거짓말 같은 빛. 그러다 문득 물의 어는점과 녹는점이 같다는 생각에 닿게 되지요.

  겨울잠에 드는 동물들 또한 그렇습니다. 얼마나 추우면 잠에 들까, 얼마나 따뜻할 때 깨어날까, 실은 같은 말인 셈입니다. 마음에도 그런 것 있다면 좋겠다 합니다. 마음이 춥고 꽁꽁이라 긴 잠으로 도망치고 싶은 오늘, 어쩌면 누군가에겐 다시 깨어나야 할 때, 기지개 켜기 딱 좋은 날인지도 모르겠다 하고요.

  오늘 꼭 소개해야 할 책 있지요. 최진영 소설가의 첫 산문 『어떤 비밀』입니다. 경칩에서 우수까지 24절기에 띄운 편지, 그리고 편지에 더한 산문들을 담았음에요. 절기 편지 소문난다이니 목이 빠져가 문고리 빠져라 오래 기다려온 소식임 두말할 것 없겠습니다.

  『구의 증명』을 비롯, 최진영 소설가가 쓴 모든 소설의 ‘비밀’이 담긴 책이기도 합니다. 첫 산문집이면서 그간 써온 모든 소설의 에필로그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게 되지요. 스물네 개의 절기를 지나며 일 년이 흘렀으나 “절기 편지를 쓰기까지 이십 년 걸렸다”, 그 또한 비밀 아닌 사실일 텝니다.

  우리가 만난 지 이십 년, 그리고 글을 써온 지 이십 년.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일들은 없”고 시간은, 세월은 고스란합니다. 그러니까 소설이지만, “지어낸 이야기지만 진짜 마음”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비밀의 반대편에 ‘진실’을 놓아도 되는 걸까 고민입니다. 비밀은 언제나 마음이라는 생각인 거지요. 어둠 속에 숨겨두어도 여전히 빛나는 마음, 환한 볕 아래 고개 숙인 얼굴의 그늘 같은 마음. 모르긴 몰라도 진심은, 진짜 마음은 언제나 어떤 비밀 속에 있는 것인지도요.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구의 증명』 속 담의 말이지요. 최진영 작가가 이를 두고 “내가 쓴 문장이지만 내 머릿속에는 없던 문장이었다”고 말할 때, 그러니까 ‘지어낸 이야기’ 속 담을 따라가다 만나게 된 어떤 문장은 틀림없이 ‘진짜 마음’일 텝니다.

  어느 추운 겨울, 찬바람 속 나란히 선 두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추워도 괜찮으니까, 손 꼭 잡고 함께 있자 말하는 연인이 있을 테지요. 한 주머니에 담긴 두 손이 있다면, 맞잡은 손안에서 벌어지는 어떤 비밀스럽고도 신비한 기적들 있다면.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했던가요. 그렇담 주머니 속 어떤 비밀로부터, 서로의 체온으로 녹아내리는 손 사이에서, 봄 또한 시작되겠지요.

  ‘퍼스널컬러’라는 게 있다 하지만, 저의 퍼스널컬러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이따금 사람의 목소리에도 ‘웜톤’ ‘쿨톤’이 있을까 상상해봅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두고 ‘음색’을 논하기도 하니까요. 그리 생각하면 저는 딱 요맘때 같은, 아주 시리지도 서늘하지도 않게, 어느 선선한 날 뒤에서 몰래 성큼 다가와 파고드는 팔짱 같은 온도를 좋아한다…고 말해봅니다. (대체 그게 뭘까요?)

  음악 추천이기도 하겠지만요, 모두가 꼭 한 번쯤 사랑에 빠졌으면 하는 ‘목소리’ 특집이다 하고, 몇 곡 써볼까 해요.

  이미 다들 알고 계실 뮤지션 김필로 시작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슈퍼스타K6> 당시 이승철 심사위원으로부터 “고드름 보컬”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요. 소위 ‘레전드’로 불리는 무대, 마침 곡명도 <얼음요새>고요. 이 영상도 어느 새 십 년이 지났다네요(!). 아직도 해마다 이 무렵이면 찾아 듣는 곡임에, 저도 이 추천을 하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또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 <싱어게인2>에서 무대 하나 꼽아왔어요! 김소연은 경연 동안 미션마다 매번 패자부활전을 거치고 살아남아,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은 무대를(!) 겪었다는 이력이 있지요. 요런 서사를 알고서 이 패자부활전 무대(<어른>)를 보고 있자면, 심사위원들과 표정이 동기화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필에 이어 김소연까지 공교롭게도, 어쩌면 저는 경연 프로그램의 준우승자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마침 김소연 버전 <얼음요새> 무대도 있으니 함께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김소연 - <얼음요새>

  이름이 서리(seori)라서 추천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요, 실제로 그가 서리를 예명 삼을 때 “맑으면서 부서질 것 같은 느낌”에 끌렸다고 하지요. 어느 겨울아침 유리창에 내려앉은 서리(성에)를 떠올리게 하는 음색과도 꼭 어울리고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그이니 자작곡들을 찾아 듣는 기쁨도 상당합니다. (<Fake Happy>)

  새삼 추천이라 하기 머쓱하지만, 이 라이브클립 이참에 한번 들어보시면 좋을 듯하여 넣어보아요. 사계절을 짧게 표현해본다면? 하는 질문에 “봄 한 송이/여름 한 컵/가을 한 장/겨울 한 숨”이라 답했다는 아이유의 유명한 일화가 <겨울잠>의 가사에 녹아 있지요. 겨울잠에 든 이에게 전하는 곡진한 편지 같은 노랫말, 그래서인지 영상의 댓글에도 그리운 이에게 띄우는 편지들이 여전히 새로 달리고 있어요. 진짜 마음으로 쓰는 편지들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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