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말할 수 있겠어요, ‘완연한 가을’입니다! 비로소 여름과 가을을 나누는 추분인 셈이네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이 말이 실은 나가 놀고 바람 쐬기 좋은 가을, 도서의 판매가 오히려 떨어져서(!) 출판계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도 있지요. 글쎄, 그 속내 아무려나, 적어도 ‘시’를 읽기 좋은 계절로는 가을만한 날 없지 않나 저는 믿고 있답니다.

  읽으며 나누며, 이 가을 또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요. 추분의 소문난다, 곧장 시작합니다!

🍂계절이 가기 전에

나눔을 나누는 가을날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결실과 자기 자신이기도 한 그것들을 허락하는 나무의 자세를 보십시오. 산수유는 얼마나 알알이 곱게 다듬은 자신을 숲에 내어놓고 있습니까. 감나무는 딱딱하던 육질을 한없이 부드러운 몸으로 바꾸고 떫은맛을 단맛으로 바꾸어 까치와 새들에게 내어놓습니다. 독한 냄새를 향기로 바꾸고 푸르고 설익어 보이던 빛깔을 붉고 고운 빛깔로 갈무리하였습니다. 밤나무는 가시를 열어제치고 열매를 활짝 드러내어 작은 짐승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신갈나무, 상수리나무는 도토리 열매를 숲 가득 내려놓습니다. 크고 작은 짐승들이 실컷 먹고 저마다 가져다가 제 굴 어딘가에 쌓아놓도록 허락합니다.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249~250쪽.

🔎책이라는 만듦새, 우리의 만짐새

난다는 책을 뜯어…

  두 시인이 함께 쓴 이 글, 특히 같은 예술가들에게 쓴 이 편지 묶음에는 순서가, 차등이 없어야겠다고, 가장 먼저 생각했어요. 두 시인의 글이 서로 앞서거나 뒤섬 없이 오로지 읽는 이에 의해 독서의 방향과 순서가 결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다음으로 정한 것은 두 시인의 글이 서로를 마주볼 수 있도록 서로 반대편에서 시작하는 형태를 택한 것(그래서 이 책에는 앞표지 뒤표지 구분 없이 두 개의 표지가 있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나눔과 마주봄, 그리고 다시 나눔이랍니다. 324쪽의 페이지를 정확히 반으로 나눈 두 글, 서로를 언제나 마주보고 있는 두 글, 그리고 소환된 열여덟 명의 예술가가 두 시인을 통해 또 읽은 이를 통해 생명을 얻고 깊어지는 나눔!

  나눔 중에서 가장 으뜸인 나눔이라 한다면 마음 나눔이겠지요. 마음을 나눔에 있어서 편지만큼 으뜸인 벗도 없겠고요. 그래서 이 책의 표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꺼내 읽어보시라고 편지 봉투로 종종 쓰이는 크라프트지를 골랐습니다. 언제든 여러분과 함께 오래 머무는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편지를 쓰다보니 그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어려웠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들은 도처에 있잖아요.
  그림, 노래, 책, 건축물, 영화, 시로 존재하죠.
  그들은 아무 곳에서나 새로 태어납니다.
  그들을 생각하고, 제2 창작물을 제작하고, 추억하는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지요.
  도무지 죽지를 않는 사람들.
  계속 태어나는 사람들.
  새 예술가를 탄생하게 만드는 존재들!

─박연준·장석주,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161쪽.

🎙 5분 만에 5문 5답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문즉답

박연준 시인(연) 그리고 권현승 편집자(권)

우문 ①

권: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오늘, 밤과 낮 중 어느 시간이 더 좋으신가요?

연:  ……밤! 밤에는 뭘 할 수도 있고 뭘 안 할 수도 있으니까요. 죄의식 없이 쓸 수 있는 시간이 밤인 것 같아요. 취해도 되고 안 취해도 되고, 글도 주로 밤에 썼고요. 근데 이제 체력이 달려서 12시만 지나면 졸음이 쏟아져요. 오래 못 깨어 있어요ㅠ

권:  하지만 이제 추분 이후로는 밤이 길어지니까!

우문 ②

권:  이번 소문난다의 키워드가 ‘나눔’인데요, 그래서 연이은 밸런스 게임, 나눠주기 vs. 나눔받기

연:  나눠주는 것! 나눠줄 때는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줄 수 있어서 기쁨이 큰 것 같아요. 근데 나눔받는 건, 저희 집이 너무 어수선하고 짐이 많아서 어디에다 둘지 모르겠더라고요. 짐은 얼마나 많은지, 가끔 서랍을 열면 이상한 것들이 흘러나와요, 액체처럼! 서랍, 특히 서랍이 정말 이상해요. 언젠가 서랍을 가지고 글을 써보고도 싶은데…

권: (그 이후 자연스레 ‘또 못 버린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한 두 맥시멀리스트의 대화…)

우문 ③

권:  나눠주기를 선택하셨으니까, 가장 최근에 나눠주었던 것이 있다면?

연:  뭔갈 많이 주긴 하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아, 아예 안 썼던 립스틱 두 개를 친구에게 줬고, 많이 가지고 있던 소시지도 나눠줬고. 주로 가지고 있다가 안 쓰게 되었던 것들을 나눠주는 것 같아요.

권:  생활형 나눔이네요!

우문 ④

권: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의 후속편으로 최근에 감명 깊게 접한 예술가 소개해주신다면?

연:  음, 알랭 바디우, 작품은 『검은색』을 얘기하고 싶어요. 검은색에 관해서만 쭉 쓴 건데 시적이고 좋더라고요. 알랭 바디우는 예전에 『사랑 예찬』을 좋게 읽었는데 최근에 『검은색』은 집에서 찾았어요. 집에 있는지 몰랐는데, 서점 같은 집이에요, 책이 계속 나와…

권:  색채 시리즈에 꽂혀 있는 난다에 맞춤한 추천이네요. 근데 서점 같은 집이라니…

우문 ⑤

권:  마지막 질문, 장석주 시인의 근황을 나눠주신다면?

연:  새로운 책을 집필중이에요. 작가들의 명문장에 대한 책이고요. 지금은 그 명문장들을 수집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언제나처럼 쉬지 않고 쓰는 중! (권: 석주샘 저랑도 지금 작업중이신데…) 그러니까요, 정말 에너지가 대단해요. 예전에는 더 엄청났는데 그나마 좀 줄어든 게 이 정도라니까요.

권:  (밀어두었던 교정지를 꺼낸다…)

• 9월 25일:   배수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걸어본다 06)

• 9월 28일:   황현산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 9월 30일:   박혜진 『이제 그것을 보았어』 | 앤 카슨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 『짧은 이야기들』

• 10월 3일: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닫는 문

더도 없이 덜도 없이 나는 마음

  다음 절기 한로와의 사이에 추석을 맞게 되었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니, 더도 덜도 없이 낮밤이 똑같은 오늘 추분, 똑 ‘나눔’을 생각하게 되는 거지요. 긴 연휴만큼 여유도 마음도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하기를, 한가위의 본디 기원처럼 소망 담아 보내어요. 물론 한 품에 그득 담고 남는 마음, 나눔으로 더욱 풍성할 수 있다면 더욱이고요!

한로寒露에 돌아올게요. 또 만나요! 🤗

  가을 같은 여름 속에 있다. 바람도 가을 같고 빛도 가을 같다. 당신도 가을 같다. 곧 가을의 살갗 같은 생각도 올 것 같다. 그때 당신도 가을의 빛처럼 하얗게 사위었으면 한다. 그때 빛은 나에게 얼마나 빛 같을까.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54~55쪽.

• 다가오는 10월 3일은 허수경 시인의 5주기예요. 여느 때처럼 진이정 시인과 합동 추모제로 조촐하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열린 하늘로 떠난 시인, 가기 전에 남긴 글들, 떠올려주셔요!
  
  
• 문학동네포에지 시리즈는 난다와 문학동네가 함께 꾸리고 있답니다. 10월 1일부터 4일까지, 시인들과 함께 <포에지를 읽는 가을>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이번 라이브는 문학동네 유튜브에서 스트리밍됩니다. 👉🏻 문학동네 유튜브 바로가기
  
  🍁포에지를 읽는 가을
  시인 이진명을 만나다 | 10월 1일(일) 오후 2시
  시인 김홍성을 만나다 | 10월 2일(월) 오후 2시
  시인 김박은경을 만나다 | 10월 4일(수) 오후 2시
  
  
• 교보문고에서 은희경 작가님과 랜선 팬사인회를 진행해요. 한소범 기자님의 진행으로, 랜선 만남과 친필 서명을 동시에! 10월 4일(수) 저녁 7시 교보문고 캐스팅 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 교보문고 랜선 팬사인회 바로가기 
  
  
• 문학동네 완독 챌린지 독파! 은희경 작가님 모시고 줌토크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10월 6일(금) 저녁 7시 30분. 독파 챌린지 참여하신 분들, 잊지 말고 온라인 책거리로 만나요! 👉🏻 독파 챌린지 바로가기